21-24면/자폐인 윤은호교수 르포/〈이불 회고전〉을 통해 장애예술의 본령을 다시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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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1-05-10 22:46 조회1,089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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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 회고전〉을 통해
장애예술의 본령을 다시 생각하다
글 사진 윤은호 교수(인하대 문화콘텐츠문화경영학과 초빙교수)
서울시립미술관, 2019년 미술계를 뒤집은 데이비드 호크니 전을 포함해 내로라하는 미술가의 전시가 항상 개최되는 곳. 이곳에 한국 대표작가 수준을 넘어 전시 첫머리에서부터 ‘세계적인 작가’로 추앙받는 전시자 중 한 명이지만, 의외로 많은 이들이 들어보지 못한 이불(李昢) 작가의 회고전이 개최되었다. COVID-19로 인해 전시장을 찾는 것 자체가 꺼려지는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따뜻한 날씨 속에 상당한 인파가 전시를 보기 위해 계속해서 미술관으로 입장하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이 빼도 박도 못하게 줄서서 입장을 기다리던 데이비드 호크니전 때와는 다르게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키면서 방역수칙에 따라 입장하는 모습에서부터 변화된 일상을 느낄 수 있었다.
전시기간 중 2·3층이 새 전시 준비 관계로 닫혀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이 전시를 보기 위해 공간을 방문했던 이유는 아마도 이번 전시에서 이불 작가가 처음으로 공개한 초기 작품에 대한 소문이었을 것이다. 특히 이번 회고전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는 12개의 동영상 아카이브 공간에서는 사람들이 동영상 하나하나를 허투루 보지 않으려고 움직이지 않았을 뿐만이 아니라, 아예 의자까지 가져와서 퍼포먼스 영상을 보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번 이불 작가의 회고전은 세 부분으로 나뉘어 개최되었다. 첫 번째 부분은 동영상 아카이브공간에 들어서기 앞서 이불 작가가 퍼포먼스의 주요 매체로 사용했던 소프트 조각과 해당 조각을 만들게 된 배경에 대한 드로잉 등이 담겨 있었다. 소프트조각은 기존의 석고나 금속 같이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고무, 라텍스, 비닐이나 천 등을 활용해 움직이거나 입을 수 있는 조각으로서 지난 1963년 오펜하임M. Oppenheim의 〈부드러운 타자기〉로 시작되었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이불 작가는 홍대 조소과에 입학한 이후 학교에서 기존 미술 책을 읽어나가다 이 조각 방식을 발견했다고 알려져 있다.
처음 보면 ‘어떻게 해서 이러한 조각이 전시의 대상이 되었는가’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전시된 ‘조각’ 세 점은 어떤 의미에서는 기괴하기도 하고, 이해 불가능하기도 하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은 동영상 아카이브를 보고 다시 돌아와 보면 사라지게 된다. 자신의 몸을 연장하는 도구로서 여성의 몸을 전시해 보여주고자 했던 이불 작가의 의도가 충분히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회고전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퍼포먼스 아카이브는 이불 작가가 1997년 사이보그 조각으로 작품을 전환하면서 퍼포먼스 미술 활동을 중단하기 전인 1988년부터 1996년까지 시행한 33개의 퍼포먼스를 동영상으로 기록한 것들 중에서 12개를 선정해 올린 것이다. 이 아카이브 부분에서 자세히 살펴봐야 할 동영상이 세 점 있다.
첫 번째 작품은 단연코 〈낙태〉다. 1989년 개최된 《제1회 한일 행위예술제》에서 선보인 이 작품은 아직까지도 반민주규제와 사찰이 만연하던 노태우 정권 시기에 이뤄진 이 퍼포먼스는 애초에 어떤 옷도 입지 않은 채 이뤄지는 것부터 시작해서 낙태 문제를 서울 한복판에서 미술로서 이슈화한다는 점에서 가장 큰 차이가 있다.
두번째 작품은 〈수난유감 : 내가 이 세상에 소풍 나온 강아지 새끼인 줄 아느냐〉다. 서울에서부터 출발해 공항에 도착해, 토쿄 한복판을 돌아다니며 자신의 소프트조각을 입은 채로 주변 대중에게 ‘찌라시’를 나눠주는 이불 작가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동시대 같은 토쿄 시내에서 코스옷을 입고 사진 촬영을 한 모리 마리코의 작품보다 더 호소력이 크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1989년에 작가가 《예술과 행위 그리고 인간 그리고 삶 그리고 사고 그리고 소통》이라는 다소 긴 행위미술제에서 진행한 무제 퍼포먼스 기록 또한 무시할 수 없다. 대학로 거리를 다양하게 꾸며놓은 아방가르드 의상을 입은 채로 걸어다니는 이 퍼포먼스는 마치 코스프레를 떠올리게 하는 마냥 당시 상황에서도 상당히 충격적인 활동이었다. 도시의 규범적인 위계에 도전하고 문제시하는 활동을 민주화 직후 수행했다는 것은 중요성이 높다고 하겠다.
마지막 전시실은 그동안의 사진 기록 등을 담아 놓은 기록들이다. 전시실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사진들인데, 아까 보았던 동영상을 다시 기록해 놓은 것들이지만 동시에 이러한 기록들이 수백 장씩 쌓여 있다는 것만으로도 존경심이 생긴다. 그러나 이불 작가의 퍼포먼스 사진보다 나를 사로잡은 것은 1990년 스튜디오에 홍수가 들이닥쳤을 때 동료 박혜경 작가가 찍은 사진이다. 이런 자세한 것까지 사진으로 기록하고 있구나는 생각을 했다. 1990년대에만 해도 아직까지 컬러 사진은 일반인이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매체는 아니었다. 그러한 일상을 수많은 필름을 통해 기록해 왔다는 점에서 놀라옴을 느꼈다.
이 전시를 보면서 한국 장애예술에 대한 분명한 인사이트를 재확인할 수 있었다. 첫째로 주변에서 그리기 원해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해서 내는 결과물이 진정한 장애 예술이라는 점이다. 이번 전시는 이불 작가가 선보이고 있는 설치작품만으로는 알 수 없는 그의 밑바탕에 있었던 모습을 드러내 준다. 이불 작가의 첫 작품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여성의 몸에 대한 질의로 점철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소통은 소프트 조각에서 시작해 퍼포먼스로, 자신의 삶을 바탕으로 만든 〈화엄〉 시리즈로, 다시 이후 〈사이보그 시리즈〉 등으로 작가가 자신의 능력을 확장해 나가는 데 도움이 된다. 다시 말해 이불 작가는 자신의 몸에 대한 깊은 고민과 행동을 바탕으로 자신의 커리어를 발전시켜 나갔다.
이러한 질문은 자폐 당사자를 중심으로 재구축되고 있는 장애예술에서도 예외가 될 수 없다. 특히 자폐당사자들은 삶에서 습득한 선호를 바탕으로 자신을 형성하는 존재다. 다시 말해 ‘발달장애인’이 장애예술이라는 영역에서 멈추지 않고 일반 예술판에서 받아들여지는 존재가 되려면 우선적으로 자신이 가진 선호에 대한 고민으로 자신의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둘째로 장애인의 예술수행에 있어서 더 많은 매체, 특히 미디어를 통한 매개와 아카이빙, 기록이 촉진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불 작가의 모습은 당시 첨단에 가까웠던 매체인 사진과 비디오를 통해 적극적으로 기록되었다. 또한 적극적인 미디어 사용을 통해 현재까지도 재발견될 수 있을 정도의 다양한 아카이브와 미디어를 보유하고 있다. 그 결과 이불작가의 미술세계는 시간이 지나면서 소프트조각, 설치 조각, 공간 설치 등 다양한 방향성을 가지며 확장될 수 있었다.
이와 같이 장애예술가들도 단순한 조소나 조각을 넘어서서 자신이 원하는 작품을 만들기 위한 다양한 기술, 특히 미디어 아트나 동영상, 사진 조작 기술에 접촉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복합 조각, 행위 예술, 팝아트, 개념 아트 등 다양한 예술 형태를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모든 장애인 ‘예술가’의 수행 또한 단순히 결과물로 마주하는 것을 넘어서서 그러한 아카이빙 과정을 통해 더 단단해질 수 있을 터이다. 그러나 그 영역까지 바라보고 작업하고 있는 ‘장애예술가’가 한국에서는 얼마나 될까?
현재의 장애예술에서 ‘장애예술가’들이 할 수 있는 영역은 매우 좁다. 일단 장애예술이라는 판이 형성된 마당에 제 생각을 일반 예술가나 평론가와 부딪혔을 때 자신의 의견을 디펜스 할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한 장애예술가들이 많이 생겼으면 한다. 그리고 이러한 장애예술가들이 생겨나려면, 자폐당사자의 선호를 펼쳐낼 수 있도록 최신 테크놀로지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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