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9/청와대내 장애인정책위원회 필요성 요청한 한미 장애인 최고위 인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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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3-03-01 21:38 조회3,669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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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창교기자의 차별 없는 세상>
청와대내 장애인정책위원회 필요성 요청한 한미 장애인 최고위 인사들
MC: 다양한 유형의 장애인들의 실제 삶을 통해
장애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주는 시간입니다.
정창교기자의 차별 없는 세상!.
국민일보 정창교기자 전화연결했습니다.
♠ 정창교기자 인터뷰 ♠
1) 오늘은 어떤 이야기인가요.
우리나라 청와대와 미국 백악관에서 장애인 최고위 지도자로 일한 두사람을 만나봤더니 청와대 직속으로 장애인정책위원회를 둬야 장애인들의 사회참여가 활발해질 수 있다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2) 청와대에 장애인정책위원회를 둬야한다고 의견을 낸 한미 지도자!! 어떤 분들입니까.
이명박 전 대통령 고별연설 당일인 지난 19일 오후 청와대 창성동별관 512호실 방귀희 대통령실 문화특별보좌관 집무실에서 두사람을 만났는데요. 방 전 특보와 만난 사람은 지난 2월 1일 임기 끝난 미국 백악관 박동우 국가장애위원회 차관보급 정책위원입니다.
3) 박동우위원은 지난주 저희 토요 초대석 시간에 나오셔서 좋은 말씀 많이 주셨는데요. 장애인정책위원회 설립과 관련해서는 어떤 의견을 표명하셨나요.
그는 김정록의원이 지난해 5월 19대 국회 1호법안으로 제출한 발달장애인법안이 낮잠을 자고 있는 것은 청와대에 장애인정책위원회가 없는 것도 큰 이유라고 지적했습니다. 미국의 경우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에 사무총장을 비롯 입법 행정 담당 등 15명이 일하는 상설기관으로 일하고 있고, 비상근 위원들도 회의 참석시마다 차관보급 수당을 받는 형태로 일하고 있다고 소개했습니다. 통치권자의 의중에 따라 사회통합 차원에서 장애인 당사자들이 백악관 특보로 임명되는 등 오바마 대통령의 장애인에 대한 관심이 높다고 전했습니다.
4) 박위원!! 십대를 한국에서 보낸걸로 알고 있는데요.
지금은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지만 미국으로 이민 가기전만해도 장애 때문에 차별을 많이 받았던 장애인 가운데 한 분이죠.
그렇습니다. 박 전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정책위원은 세살 때 소아마비가 와 왼손잡이인 자신의 왼팔이 마비된뒤 학교 교육 과정에서 초등학교때 놀림받고 친구들이 때리고 도망가는 일이 수시로 일어나는 등 차별을 겪으며 열등감에 시달렸는데, 열아홉살 때인 1970년 5월 10일 미국으로 건너간뒤 전혀 다른 인생을 살게 됐다고 회고했습니다. 미국에 가보니까 자신을 이상하게 보는 사람이 없어 장애인 차별때문에 고통받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오히려 장애인이기 때문에 오늘의 자신이 있었다고 설명을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한국이름 ‘박완순’에 대해 친구들이 당시 유행하던 ‘왈순 아지매’로 놀린 기억 때문에 이름도 ‘동쪽나라에서 와서 도움주는 사람이 되자’라는 뜻으로 ‘박동우’로 이름을 바꿨다고 합니다.
5) 이름까지 바꿀 정도의 의지가 미국에서 통했을까요. 결국 차관보급의 장애인 정책위원 까지 오르셨는데, 박위원의 그의 성공비결을 미국의 인사제도 덕이라고 생각하고 계신다구요.
자신이 2009년부터 백악관 차관보급 장애인 정책위원이 된 것도 미국의 엄격한 인사제도를 통과한 결과라고 소개했습니다. 미국의 인사제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라고 합니다. 21년간 회사원으로 일하고, 7년간 미국계 은행에서 근무하는 등 주류사회에서 일을 하면서 1999년 캘리포니아주 장애인 정책위원 중 유일하게 동양인으로 일한 것이 백악관에 들어갈 수 있는 지름길이 되어줬다고 합니다. 차관보급 정책위원은 대통령이 상원의 인준을 받는 500명중 1명으로 차관보의 급여가 연 18만달러 수준이라고 합니다. 미국내 5600만명의 장애인 정책과 경제적 자립문제, 탈시설화 문제 등이 이슈가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에서도 직장인이 된 장애인을 위해 파타까지 열어줬는데, 2주후 급여를 받아보니까 19달러에 불과해 분노한 사례도 있고요. 한국교포가 자폐성장애 아들의 장애를 인정받기위해 학교를 상대로 1년간 투쟁한 사례도 있었습니다. 요즘은 랜터만법에 의해 정부부담이 너무 커 축소하는 움직임에 대해 발달장애인 부모들이 들고 일어나면서 그대로 존치하기로 하는 등 미국내에서는 표를 가진 유권자들에게 정치권이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습니다.
6) 그랬군요. 그런가하면 박 위원!!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는 만큼, 한국의 장애인들 지원에도 적극적이라면서요.
특히 이날 동행한 사람 중에는 배은주 한국장애인국제예술단 대표도 동석했는데, 올 초 LA공항에서 단원들이 1시간도 안돼 통과될 수 있었던 것도 미국ADA법을 근거로 LA공항 관계장에게 박동우 정책위원이 미리 장애인 예술단의 도착 사실을 알리고 서비스를 요청한 결과였다고 합니다. 또 LA 중앙일보에 대서특필토록 해 관객들이 만석이 될 수 있도록 도와줬다는 것입니다. 배은주 대표는 한국의 예술팀이 미국에 갔을 때 맨 먼저 거치는 곳이 LA이기 때문에 교민들도 공연을 선택해서 보기 때문에 관객을 모으기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박동우 정책위원의 역할이 컸다고 강조했습니다.
박동우 전 백악관 장애인 정책위원은 이민사회가 장애인예술단체와의 문화교류를 통해 눈물을 흘릴 수 있도록 한 것 자체기 적지 않은 반향을 일으켰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민생활이 마음을 건조하게 할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올 초 공연도 박동우 정책위원이 지난해 7월 한국 방문 당시 먼저 연락을 j원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시했습니다. 미국에서도 금전적인 지원은 쉽지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7) 그랫군요. 그럼 청와대 내 장애인정책위원회를 둬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방귀희씨와 박동우위원의 앞으로의 활동계획이나 바람 정리해주시겠습니까.
장애인 역사상 국내 최초로 청와대에서 특보로 일한 지체장애인 방귀희씨는 한국체육대 사회복지과 초빙교수로 자리옮겨 장애인 정책 연구를 계속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이명박 전대통령이 방특보에게 장애인문화예술센터 개설을 위해 정부청사이전건물 활용해 추진하겠다고 약속한 것도 정치권의 무신경과 공무원들의 복지부동으로 결국 수포로 돌아갔다고 하소연했습니다.
박동우 전 백악관 장애인정책위원은 오바마정부도 최근 장애인 최초로 커림 데어를 특보로 임명했다며 장애인들이 정부 곳곳에서 일해야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발의만 해놓고 잠자고 있는 발달장애인지원법도 일단 시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언급했습니다. 미국의 ADA법도 처음부터 완벽하지는 않았다는 것이 그의 조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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